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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무실 인테리어에 관한 이야기

2007-09-04 | 개발 이야기

사무실 인테리어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여러가지를 고민해야합니다. 향후 몇년간 몇명이나 충원될 지도 가장 고려사항이고, 바닥이나 벽재로 어떤 재료를 쓸 것인지도 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고려사항입니다. 그런데 내 생각에는 그보다 더 많이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에어콘 선택이나 샤워실 문제가 아닙니다. 영 다른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o 소프트웨어는 품질이 진짜로 정말로 너무나 중요하다.

작년 말에 벤처기업협회에서 성공한 벤처기업인과의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테헤란로에있는 업체들을 방문하다 중간에 시간이 비어서, 별 영양가 없어보이는 행사이긴 하지만 간담회라니까 공짜 커피라도 한잔할 까 싶어서 참석했습니다. 성공한 벤처기업인으로 다산네트웍스의 남민우사장이 자신의 기업 경영 경험을 이야기해줬습니다. 기대 이상이라고 할까요? 준비된 원고를 읽는 연설이 아니라 편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라서 그런지 맘에 와닿는 내용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 품질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맘에 와 닿았습니다.

다산네트웍스는 네트워크장비를 개발하는 업체입니다. 회사 초창기에 이미 다른 네트워크장비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제 막 장비를 개발한 후발주자인 다산네트웍스는 KT나 하나로 같은 큰 업체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작은 업체를 대상으로 하여 영업을 하였고, 돈은 적게 받고 일은 엄청나게 해야 하는 힘든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고객 업체들은 사소한 결점에도 수정해 줄 것을 요구하였고, 힘이 없는 다산네트웍스 입장에서는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어서, 기술자들이 몇날 몇일 밤새며 다 들어 줄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한가지 다행인 점은 영업이 그다지 잘 되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객이 많지 않았고 고객들의 요구사항을 만족시켜 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기회가 왔다고 하네요.

선발업체들은 영업에만 치중하고, 제품의 품질에 많이 신경쓰지 못했기 때문에 불량 제품을 교체하는데 과도한 비용이 들어 영업하면 할 수록 오히려 적자가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대신 다산네트웍스는 장비의 품질을 꾸준히 높여왔기 때문에 BMT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고 낮은 금액에도 이익을 낼 수 있게 되어 국내 네트워크 장비 시장의 선두업체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산네트웍스의 2004년 매출은 850억입니다.

소프트웨어의 품질은 버그의 갯수와 관계합니다. 버그가 많은 제품은 영업이 잘 되더라도 결국 유지보수문제를 일으키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덜된 제품은 많이 팔릴 수록 손해가 납니다. 어떤 손해가 나죠? 아~ 맞아요. 유지보수하는데 인건비가 들어간다는 거죠? 땡! 틀렸습니다. 그 손해도 손해지만 더 큰 손해는 개발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검색엔진을 개발하는 우리 고객 회사 중의 하나에 기술지원 나갔을 때 입니다. 그 회사 주력개발자중 한사람인데, 저한테 몇가지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직 제품 개발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영업팀에서 여기저기 검색엔진을 팔아 버린거에요. 그래서 수시로 버그 잡으러 돌아 다니느라 회사에 있을 시간이 없어요. 아직 팔면 않된다고 했는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몇개월 뒤에 회사를 그만 뒀다고 합니다. 제품의 품질은 개발자의 자존심입니다 또 회사의 자존심이기도 합니다. 버그없는 소프트웨어는 없겠지만, 당장의 이익을 위하여 눈에 띄는 버그를 가지고 있는 제품을 판매한다면, 결국엔 죽음에 이르는 길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국내외에서 제품의 품질에 관계된 수없이 많은 사례가 있습니다만 이들을 다 살펴볼 필요도 없이, 우리 문서필터만 봐도 품질의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문서필터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우리 고객이 되어있는 많은 검색엔진 업체들이 자체개발한 문서필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개선하고 안정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은 다 포기하고 우리 문서필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우리도 아주 엉망인 제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첫 고객인 네이버를 맞이한 뒤로 수없이 많은 날들을 버그잡으면서 보냈기 때문에(문서필터 2.0 이 나오기 전까지 사실상 실제 고객은 네이버 하나였습니다) 지금은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고 시장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있어서 인지, 낮은 품질을 가지고 시장을 선점하고 있는 제품들을 보면, 언제라도 내가 그 시장을 빼어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공적인 소프트웨어의 가장 중요한 점은 얼마나 최신의 기술을 사용하는냐가 아니라 얼마나 품질이 좋은가입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제품의 품질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겨집니다. 회사의 여기저기에 품질에 관련된 포스터나 표어가 붙어있는 경우도 여럿 봤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그 중요성에 비해서 품질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럼 품질보다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꼭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일정과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이 더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사실 품질은 일정과 기능에 밀려서 다루어지고 있는 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알게된 파킨슨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업무는 그 업무에 할당된 시간만큼 늘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인데, 일견 수긍이 가는 면이 있습니다. 일에 기간을 정해주면 기간을 맞출려고 한다는 것이죠. 키스티 프로젝트같은 SI성 프로젝트 하다보면 매우 실감이 나는 말입니다. 그럼 이 법칙을 반대로 해석해봅시다. 기간을 작게줘도 일이 된다는 것 아닌가요? 정말로 일이 될까요? 됩니다. 대신 품질이 떨어지는 것 뿐입니다. 내 경험에 따르면 SI성 프로젝트의 경우에는 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해도 품질이 아주 조금 떨어질 뿐입니다.

다양한 기능은 어떻습니까?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에는 수없이 많은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용하는 기능은 매우 단순한 몇가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많은 다양한 기능은 어디다 쓰는 것이죠? 그 기능들을 개발하느라고 수없이 많은 개발자들이 시간을 쏟아 부었을텐데… 우리한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사실상 거의 의미가 없죠. 일반인들이 워드에서 XML로 저장하는 기능을 사용할 일이 있겠습니까? 엑셀에서 포아송분포를 계산할 필요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러한 다양한 기능들은 영업을 위한 자료에 사용될 문장 몇개 만드는 것 이상의 용도가 없습니다. 핵심기능이 잘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일정과 기능도 무시 못할 요소이기는 하지만, 결코 품질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o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제품의 또는 프로젝트의 품질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요? 모든 개발자들이 다 따라야 하는 표준지침이나 방법론일까요? CMM이나 ISO9001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할 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람, 즉 개발자 입니다. 얼마나 실력있고 얼마나 책임감있는 개발자가 투여되었는 가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손발이 척척맞는 팀워크 또는 카리스마있는 팀장이 이끄는 팀워크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팀워크가 좋으면 평범한 사람도 탁월한 실적을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개발자를 선택할 권한은 제한적이고, 팀워크는 좋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 회사 사람들이 이미 탁월한 전문가가 되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보기엔 평범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들보다는 한 수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일해온 것을 봐도 타 소프트웨어 회사와 비교할 때 항상 우리 개발자들이 가르쳐 주면 주었지 배우는 입장은 아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 인간성만 봐도 우리 사람들이 한 인간성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앞으로 회사에서 새로운 직원을 뽑을 때는 매우 신중을 기해서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사가 좀 된다고 아무나 뽑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지금 수준에 적응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뽑아야죠.(좋은 사람을 뽑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머릿속에서는 대충 정리가 되가고 있는데, 나중에 시간이 되면 글로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개발자가 품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면, 좋은 개발자를 뽑는 것은 기본이고, 현재 있는 개발자들이 개발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환경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정치적 환경입니다. 이건 언제나 발생하고 가장 골치아프고, 해결하기 어려운 것 중에 하나 입니다. 팀장이상 급에서는 어느 정도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죠. 정치적 환경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임원들에게 알려주세요. 임원들이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치적 환경 때문에 골치아파 하지 마십시오. 임원들이 해야하는 역할 중에 하나가 정치적 문제를 없애는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기술적 환경이 있습니다. AIX에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을 짜야하는데 AIX가 없으면 안되겠죠. PC가 2대 있으면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한대 더 사야겠구요. 지금 쓰고 있는 컴퓨터가 느려서 컴파일시간이 오래걸리면 바꿔야죠. 메모리가 부족하면 늘려야겠구요. 기술적인 환경은 약간의 비용을 들이면 쉽게 해결이 가능합니다.

마지막으로 업무 환경이 있겠습니다. 멋들어진 대리석 바닥, 불편하지 않은 의자, 너무 좁지 않은 책상, 모니터 화면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프라이버시,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냉온풍기, 여유롭게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휴게실, 피곤할 때 잠시 눈 붙일 수 있는 수면실 등 비용이 좀 들어가는 것인데 비용을 들인만큼 품질에 영향이 있을까요? 다시 원래의 문제로 돌아왔군요. 업무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과연 얼마나 품질을 개선할 수 있을까요? 고민해 봅시다.

o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야간근무는 일상적이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치고 밤새운 경험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도 누구한테 뒤지지 않을 만큼 많은 날을 새워 봤습니다. 일정에 쫓겨서 밤새우는 것은 좀 특별한 경우라고 하고, 야간 근무는 도대체 왜 당연한 것으로 받아지고 있습니까? 업무시간만 가지고는 일을 마치기 어려울 정도로 과도한 일을 맡고 있나요? 제 경험에 의하면 업무시간에 업무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업무시간에는 일을 할 수가 없어” 이런 말을 하거나 들어본 적 없나요? 고객과의 회의, 영업팀과의 회의, 전화나 메신저로 나를 부르는 사람들… 많은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개발자들이 개발만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지가 않습니다. 업무시간에는 인터넷 뉴스사이트나 돌아다니다가, 다들 퇴근한 저녁시간이나 되서야 겨우 일하게 되죠. 업무시간에 주로(^^) 일을 했다면 일하는 시간이 부족해서 철야를 하거나 야간작업을 하는 경우는 많이 줄 것입니다.

야간근무와 철야작업을 하게 되는 또 하나의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누군가가 일정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에 있습니다. 일정관리를 하는 사람은 고객일 수도 있고, 팀장이나 임원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일정을 정해놓고 언제까지 꼭 맞춰야 한다. 이것이 일정관리인데… 일정관리를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한번 세워진 일정은 맞출려고 노력합시다. 그보다 일정을 세울 때, 이 일이 꼭 해야 하는 일인가부터 따져보고 적절한 품질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합리적인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그리고, 일을 해보다가 일정을 맞추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일정을 늦출 수 있는가를 고려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일정은 (고객이 정해준 일정을 포함해서) 늦출 수 있습니다. 일정을 맞추기 위해 품질을 희생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마이크로소프트 뿐만아니라 우리가 아는 많은 게임 소프트웨어 회사들이 제품의 출시일을 예정보다 몇달씩 늦춥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롱혼은 몇년씩 늦춰지고 있습니다. 회사가 스스로 정한 제품 출시 약속을 깨고 싶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회사들인데 약속을 지키고 싶겠죠. 그러나 품질이 떨어지는 제품을 출시하는 것보다는 출시 일정을 지키지 못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일정보다 품질이 중요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는 꼭 필요한 절대 시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절대 시간은 얼마나 자리에 앉아 있었으냐를 말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얼마나 일에 집중하였는가를 나타내는 시간입니다. 일에 집중하게 되면 시간 가는 것을 잊게 됩니다. 잠시 일했는 가 싶으면 벌써 점심시간이고, 벌써 퇴근시간이 되어있죠. 이렇게 시간이 가는 것을 모르고 몰입하는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플로(Flow)라고 부릅니다. 우리 말로는 흐름을 탓다고 번역하면 될 것 같습니다.

흐름을 오래 탈 수 있도록 하는게 중요합니다. 흐름을 타고 있는데 방해를 받아서도 안됩니다. 개발자의 대부분은 업무시간에 흐름을 타지 못합니다. 집에서 흐름을 타는 사람도 있고, 고객한테서 연락이 없고, 개발자 아닌 사람들이 다 퇴근하고 난 뒤에야 겨우 흐름을 탈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하는 일이 단순 노가대 성격이라면 흐름이고 뭐고 있겠습니까? 그냥 아무 생각없이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에 이런 단순 노가대성격의 일이 많지 않습니다. 간혹, 이런 흐름이 필요없는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업무시간 중에도 흐름을 탈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개발자들이 업무시간에 플로에 빠질 수만 있다면 야간근무를 안해도 될까요? 완전히 없어진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비 자발적인 야간 근무는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일정이 적절하게 설정되었다면, 품질을 희생하지 않고 야간근무를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업무환경을 개선해서 흐름을 타는 시간을 늘릴 수 있다면, 그래서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야간근무를 줄일 수 있다면, 돈을 좀 들여도 되지 않겠습니까?

o 좋은 사무실을 자랑하는 사람들

지난 금요일에는 우리 사무실 인테리어에 참고하기 위해서 주변 사무실을 둘러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진첩에 텅 비어있는 우리 사무실 사진만 올라와 있어서 다른 사무실 사진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이차장이 잠깐 보여준 사진만 보고도 다른 사무실의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자기 사무실을 자랑한다면 정말 업무하기 좋은 환경이라서 자랑합니까? 돈을 많이 들였다고 자랑합니까? 대부분 겉모양을 자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무실은 바닥을 대리석으로 했다구요?(미끄러져 넘어지기 딱 좋겠군요), 자재를 원목으로 했다지요?(그래서 원목으로 했기 때문에 더 일이 잘 된답니까?) 책상을 빼고 했는 데도 저렴하게 해서 오천만원밖에 않들었다지요?(사실은 삼천만원밖에 안들었겠지요) 내가 보기에는 업무환경과 별 관계없는 과시욕입니다. 사무실을 자랑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자랑합니다. 사무실이 이렇게 좋아져서 더 좋은 제품을 만들게 되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었나요? 개선된 업무환경 때문에 야간작업이 줄었는데도 생산성이 더 높아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나요? 아마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멋진 회의실을 자랑합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돈 들인 테가 나지요. 서라운드 스피커와 연결되어 있는 빔프로젝터, 푹신한 소파형 의자, 넓고 투명한 유리 테이블, 멋진 조명… 하하하 그래서 제품 품질 많이 좋아졌답니까? 멋진 회의실은 제품의 품질과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음… 생각해보니 조금은 관계가 있을 수 있겠군요. 자기 자리에서 일하기 힘든 메인 개발자가, 비어있는 회의실을 자기 개발실로 쓴다면 제품의 품질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겠군요. 복도의 조명과 장식품, 복도 바닥의 타일 등도 품질과 전혀 관계가 없는 항목입니다. 복도에서 개발하는 사람있습니까? 복도는 지나다니기만 하면 됩니다. 회의실이나 복도는 돈 들일 데가 아니라구요.

우리 인트라원 자유게시판에 보면 “빌게이츠 찾아가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지도 3장이 올려져 있을 것입니다. 아마 관심있게 본 사람들은 알 수 있었겠지만 마이크로소프트 메인 캠퍼스의 대부분 건물들은 십자(+)형이나 에이취자(H)형으로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 건물들이 대부분 박스(ㅁ)형인 걸 생각하면 매우 특이한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메인 캠퍼스에도 박스형 건물들이 몇개 있지만 강당 등 공통 공간인 경우입니다. 직원들이 일하는 공간은 대부분 십자형과 에이취자형 건물입니다. 박스형건물이 건축비가 싸게 먹힌다는데… 왜? 십자형과 에이취자형으로 건물을 지었을까요? 십자형과 에이취자형 건물의 특징은 좁은 복도와 복도 양쪽으로 창이 딸린 방을 배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마이크로소프트는 메인 캠퍼스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에게 창이 딸린 작은 방(1인실 또는 2인실)을 주고 있습니다. 너무 돈이 많아서, 돈질을 하는 걸로 보이나요? 빌게이츠씨가 헛 돈 쓰는 거 봤습니까? 차라리 기부를 하면 했지, 과시를 위해서 돈쓰는 건 아닐 겁니다. 또, 빌아저씨쯤되면 과시하지 않아도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에서 제일 돈이 많은 사람이잖아요. 빌아저씨가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는 가장 좋은 업무 환경을 연구해서(연구비줘서 시켰겠죠) 실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빌아저씨가 사무실 자랑하는 걸 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윈도우즈나 오피스 좋다는 이야기만 하지, 자기네 사무실 좋다는 이야기는 안하죠. 왜 하겠습니까? 다른 회사들도 다 그렇게 사무실 만들면 경쟁력 하나가 사라지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돈 많이 들인 사무실을 만들어서 자랑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게 아니라,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야간 근무를 줄일 수 있는, 업무에 도움이되는 사무실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o 좋은 업무환경을 만드는 비용은 사실상 매우 작다.

인테리어를 하게 되면 아무리 작은 돈을 들이더라도 수천만원이 들어갑니다. 오년전에 이천만원쯤 들었으니까 지금은 못해도 삼천만원은 들거라고 생각합니다. 푼돈은 아니죠. 그 돈을 어떻게 쓸거냐에 따라 (겉치장하는데만 사용한다면)부족하기도 하고, (실속있게 사용한다면) 남을 수도 하겠죠. 그러나 좋은 업무 환경만 만들어진다면 삼천만원이 아니라 오천만원이 들더라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높은 품질의 제품만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래서 시장에서 좋은 평을 얻을 수 있다면, 오천만원은 푼돈입니다. 오십억, 백억 벌어들일 수 있다면야 오천만원 아끼겠습니까? 기꺼이 써야죠.

그럼 인테리어 비용을 어디다 쓸까요? 빌아저씨처럼 모든 사람에게 독방을 만들어 주는 데 사용할까요? 찬성입니까? 하~하~하~ 내가 반대입니다. 아니 기껏 독방 만들어 주자는 논조로 글 쓰고 있으면서 반대하고… 짜증납니까? 장난하냐고요? 아닙니다. 진지하게 반대합니다. 2명이 같이 작업하는 게 효율적인 경우에는 2명이 같은 방에 들어가야하고, 4명이 같이 개발하는 것이 효율적인 경우에는 4명이 같이 작업해야하고, 팀의 규모에 따라 방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빌아저씨는 돈이 많아서 모든 사람에게 독방내주고, 붙어있는 독방 몇개씩 묶어서 하나의 팀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방을 줄만큼 넉넉한 공간을 가지지도 않았고, 모두가 혼자서 개발작업을 원활히 할만큼 그렇게 실력이 있지도 않습니다. 여하튼 방을 만듭시다. 가능하면 외부 창가쪽으로 창가가 아닌 문쪽일지라도 넓은 창이 있는 방을 만드는데 돈을 씁시다. 각 방마다 개별로 천정등 스위치 달고, 에어콘 달고, 책상하고 의자하고 전화 넣어주고 방 안쪽은 방주인들 맘대로 해도 된다고 합시다. 밀림을 만들던, 독서관을 만들건, 책상을 난장판으로 만들건 주인장들 맘대로 알아서 꾸미십시오.

방마다 프린터가 필요하나요? 방마다 책장이 필요하나요? 필요하다면 사드리겠습니다. 개인별로 사물함이 꼭 있어야겠다구요? 꼭, 보르네오 서랍장이 아니라도 되지요? 삽시다. 더 필요한 게 있습니까? 수면실이요? 많이 사용되지 않길 바라면서 만들겠습니다. 샤워실이요? 베란다에 커텐쳐주면 되나요? 기계실이요? 만들겠습니다. 대회의실에 빔프로젝터가 필요하다구요? 요즘 비싸지 않고 좋은 것 많은데 하나 삽시다. 헛된 장식에만 돈쓰지 않으면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구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용이야기가 나왔으니 내 마음속에 있는 생각하나 더 알려 드리지요. 좋은 업무환경을 만들었을 때 큰 비용절감은 새로운 사람을 구하기가 쉬워질 거라는 것과 다른 회사에서는 방을 맘대로 꾸밀 수 없을테니 쉽게 그만 둘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의료보험이 좋아서 회사 못 그만두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휴가 규정이 좋아서 회사 못 그만 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업무 환경이 좋아서 못 그만 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경험에 따르면, 회사를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인 요인이고, 그 다음으로는 급여 문제 입니다. 이직에 대한 내 생각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사람을 새로운 사람으로 대치하는 비용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좋은 업무 환경을 만들어서 이직을 방지할 수 있다면 좋은 업무환경을 만드는 비용은 실로 무시할 만하다 하겠습니다.

o 좋은 업무환경에서 지켜야 할 것들

얼마 전에 대전 키스티에 갔었을 때 입니다. 잠시 식사하러 나갔다 왔더니 모니터에 무슨 주차위반딱지 같은게 붙어있더군요. 뭔가 싶어서 자세히 봤더니, “경고 : 귀하는 보안규정을 어겼습니다.” 라고 써져있고, “이석시 모니터가 켜져있었음”, “책상에 펼쳐진 책과 서류가 있었음”, 머 이런 저런 내용이 체크가 되어있었습니다. 키스티가 그리 좋은 조직만은 아닌 것 같은 게, 자리를 비울때는 모니터를 꺼야 하고, 책상위에 서류는 말끔히 정리해야 하는 모양입니다. 파티션 형태의 사무실이라서 그래야 보안이 지켜진다고 생각하나 보죠? ^^

코트라 프로젝트할 때보니까 거기는 메신저 뿐만 아니라, 신문사나 증권사 등 주요한 웹 사이트를 차단하고 있더군요. 심지어 우리회사 홈페이지까지도 차단 당하고 있었습니다. 코트라에서는 인터넷 서핑은 않되고, 바둑은 두어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도 방을 많이 만들게 되면 몇가지 지켜야 할 것이 있겠습니다. 않지키면 방문을 걸어 잠궈버리거나, 방문앞에 빨간딱지를 붙여 놓을까요? 미쳤습니까? 다 큰 성인들한테 그런 모욕적인 방법을 쓰다니요. 여하튼 방주인 맘대로 해도 된다고 해놓고 뭘 지키라고 그러나요? 당장 생각나는 것은 몇가지 않됩니다.

우선 식사 시간을 잘 지켜야 합니다. 직장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 중에 하나가 식사 시간입니다. 같이 식사하는 횟수가 많을 수록 많이 친해집니다. 방이 나뉘어지면 다른 방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식사할 기회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식사 시간을 맞추면 식사시간에 최소한의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습니다. 식사 시간을 잘 지킵시다.

 

두번째로는 이메일과 메신저사용을 줄여야 합니다. 방단위로 생활하게 하는 큰 이유가 흐름을 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메일이 들어오는 대로 바로바로 체크해야겠습니까? 메신저로 연락오는 것을 다 받아줘야 하겠습니까? 아무나 아무때나 흐름을 깨도록 놔두겠습니까? 개발하는 중간에 쉬는 시간에 이메일 체크하고 메신저 열어놓으면 되지 않을까요?

세번째로는 뉴스나 증권사이트을 자제하는 것입니다. 이메일과 메신저는 외부에서 접촉해오는 것이지만, 뉴스나 증권사이트의 경우는 스스로 빠져드는 것이죠. 뉴스 중독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남성의 상당수는 뉴스중독이라고 하던데, 한번 뉴스에 중독되면 한시간에도 몇번씩 뉴스사이트에 접속하게 됩니다. 증권사이트도 중독성이 있습니다. 어쩌면 뉴스사이트보다 더 심하죠. 본인이 이런 중독이라면 담배끊는 것 만큼이나 큰 자제력이 필요합니다.

또, 인트라원과 버전관리시스템, 버그관리시스템 등 전산시스템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 얼굴 보는 횟수가 적어지기 때문에, 이런 전산시스템이 주된 의견교환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어야 겠습니다.

o 후기

토요일에 나와서 키스티에서 요구한 NTIS(뭐의 약자인지도 모르겠음) 자료 만들어주고, 번호판 프로그램짜다가 밤에 한국 브라질 청소년 축구보고… 축구보면서 짬짬히 내 의견을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는 것이 한참 걸렸음. “밤새지 맙시다”라고 쓸라고 밤샜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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