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문화가 성숙한 회사를 향해”


작은 IT 벤처가 혁신을 이뤄낸 후 맞는 고비는 성장에 따른 혼란이라고 합니다. 외형이 작더라도 건실한 문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이 모색해 볼 만한 대안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에 만난 주인공은 그러한 문화를 키워내고 있는 전경헌 님입니다. 이번 인터뷰에는 특별히 developerWorks 대학생 모니터 요원 이국진, 유용빈 님이 함께 했습니다

전경헌 | 사이냅소프트 CEO

 
  전경현 창업 전에는 어떤 일들을 하셨나요.
한국무역정보통신(KTNET)에서 개발자로 정부•공공 기관의 무역 관련 전산화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창업 준비는 언제부터 하셨나요.
1999년 KTNET을 그만두면서 검색엔진 회사를 세워 일하다가 2000년에 ‘투자를 받지 않고 회사를 꾸려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고 사이냅소프트를 만들게 됐습니다.

요즘 들어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투자 없이 창업을 하는 걸 종종 보는데 상당히 일찍 그런 시도를 하셨군요.
1999년 당시만 해도 투자를 받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고 당연히 투자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보통이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 첫 회사는 투자를 받고 시작했는데 그렇게 회사를 해나간다는 것이 복잡한 문제가 상당히 많고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회사를 만들어 근검 절약하며 시작부터 조금이라도 수익을 내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사이냅소프트를 창업했고 지금은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다른 비전도 있으셨나요.
당시에는 지금보다 비현실적인 비전이 있었습니다. 개발만 정말 열심히 하고 다른 누군가가 그걸 팔아주는 연구소 같은 회사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해보니 현실적이지 않더군요.(웃음)

사이냅소프트 시작부터 지금과 같은 문서 처리 분야에 주목을 하셨던 건가요.
대학원에서 검색엔진을 전공했고 첫 회사도 검색엔진 회사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분산 검색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음악이나 동영상 분산 검색은 저작권 침해 문제가 있어 대신에 문서 파일을 분산 검색하는 P2P KMS를 만들었습니다. 문서 내용을 추출해 그 내용을 분석, 검색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다른 목적으로 악용하는 사용자들이 늘어나면서 그 서비스를 내려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당시 포털들에서 문서 파일 검색에 대한 필요가 생기면서 P2P KMS의 기능 중 문서 분석 기술을 NHN에 라이선스를 하게 됐고 반응이 좋아 다른 포털들에도 공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서 파일 처리는 고난도 기술이 필요하다기보다는 상당한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해야 하는 작업 같습니다.
사실 사이냅소프트에서 개발한 문서 필터 같은 문서 처리 기술은 다른 회사에서도 노력만 하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기술입니다. 단 오랫동안 끈질기게 유지보수를 해야 하고 새로운 파일 형식이 생겼을 때 분석 적용해야 하며 또 기존 파일 포맷이라도 뭔가 문제가 생겨 훼손된 것들에 대해서는 그때그때 패치를 잘 해내야 합니다. 웬만한 개발자들은 1년 동안 그 일을 하면 “이제는 다른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할 정도입니다. 문서 필터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쓰던 회사들도 있지만 끝까지 유지보수하기 어렵다고 하니까요. 저희 나름대로는 남들이 하기 싫은 일을 기꺼이 오래 하면서 가치가 생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이냅소프트 개발자들은 그런 어려움을 잘 이겨냈나요.
힘들어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다른 회사보다 조금 나은 부분이 있다면 ‘남들이 싫어하고 귀찮아 하는 일을 하는’ 것에도 가치가 있다는 데 공감한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큰 성공을 거두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일을 하면 그 안에서도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공감대는 자연스럽게 형성됐나요.
특별히 교육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은 일을 하다 잠시 쉬면서 농담처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고 귀찮아 하는 일이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곤 합니다.

회사 성장 측면 외에 고객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고객으로부터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웁니다. 고객이 대부분 서비스나 솔루션을 개발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그런 회사들에서 쓰는 좋은 개발 방법론이나 성공 요인들을 공부해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국진: 학교에서는 코딩 스타일 표준을 따르라고 배웠는데 최근 블로그에 올리신 강의를 보면 ‘코딩 스타일 표준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학생 시절부터 여러 가지 코딩 스타일을 봐왔지만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는 못했고 10년 차가 됐을 때쯤 제 자신만의 스타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다른 개발자들 역시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고 그게 저와 다르니 불편하더군요. 마이크소프트 같은 회사들은 어떤 스타일로 코드를 짤까 궁금했는데 그런 유명한 회사들도 단일한 스타일을 쓰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느낀 것이 회사 전체적으로 통일된 코딩 규칙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이냅소프트에서는 짝 프로그래밍을 많이 하는데 서로의 코딩 스타일에서 좋은 점을 따르면서 각각의 프로젝트나 팀에 따라 자연스럽게 코딩 스타일이 정해집니다.

이국진: ‘좋은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 스트레스도 받아야 한다’는 글도 쓰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약간의 스트레스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발전에 자극이 되기도 하구요. 물론 회사 생활하다 보면 겪을 수 있는 정치적 스트레스 같은 것들은 받으면 안 되겠죠. 기술적인 측면이나 선의의 경쟁에서 오는 긴장감 같은 것은 좋다고 봅니다.

유용빈: 정치적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회사 내에 그런 스트레스가 얼마나 있는지 제가 잘 알지는 못합니다만 다른 회사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적으리라 생각합니다. 개발자들이 지원하는 역할에 머무르는 회사가 많은데 사이냅소프트는 저부터 시작해 영업 직원들도 개발자 출신이라 서로 이해하는 부분이 많아 갈등이 크지는 않습니다. 또 지난해 애자일 컨설팅의 컨설팅을 받으면서 회고하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회고란 체계적으로 즐겁게 반성하고 개선점을 찾는 활동인데 그 이후로는 회사에 있던 문제들에 대해 서로 동등한 수준에서 의사 소통을 하면서 그와 같은 스트레스가 더 줄고 있다고 봅니다.

유용빈: 방법론 도입과 적용에 대해 앞서 언급하셨는데 제품을 개발하는 데 쓰는 노력과 제품 개발 프로세스 개선에 드는 노력의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지난해에는 프로세스 개선에 30, 개발에 70이었고 지금은 프로세스 개선에 10, 개발에 90 정도의 비율입니다. 프로세스 개선은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실수나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이 있다면…
첫 창업 경험에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경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내가 회사를 망칠 것 같아 많이 두려웠습니다. 개발 프로젝트 관리자 역할만 하다 조직을 새로 만들고 이끌어 가게 됐는데 모르는 게 너무 많았습니다. 주변에 물어보고 배우기보다는 저를 대신할 훌륭한 사람들을 찾아놓고 뒤에서 개발만 해야지 생각했습니다. 그게 잘못 됐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날 대신해 일하려면 그 일에 대해 나만큼 잘 알아야 하고 애정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을 간과한 것이죠. 그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이 지금 회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아는 사람들이 모여 투자 없이 근검 절약하며 좀 더 좋은 근무 환경과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이국진: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일찍 퇴근한다’는 글을 쓰셨는데 정시 퇴근은 잘 지켜지나요.
그 글은 2005년에 쓴 글입니다. 전에는 일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도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막차 시간이 거의 다 됐을 때나 새벽에 집에 들어갔습니다. 집에서는 잠만 자고 휴일에도 회사에 나와 일하기도 했습니다. 거의 일만 하는 사람이었죠. 일로서 성공하고 싶은 생각도 많았고요. 2005년은 큰 아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해였는데 밥 먹으면서 유치원 생활에 대해 아들에게 물었는데 아이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대신 이야기를 해줬지만 아들에게 직접 듣고 싶다고 말을 거니 아이가 “아빠는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 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보기에는 자기가 일어나기 전에 회사에 나가고 자고 있을 때 집에 들어오니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겠더군요. 물론 아내를 통해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지 늘 듣고 있었지만요. 굉장히 충격을 받았고 이게 제가 원하던 삶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만 해도 크는 동안 많이 안아주고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데 열심히 일하다 보니 어느새 아이는 자라 학교 갈 나이가 되어 있더군요. 세상은 장기전이고 그러려면 가정도 지켜야 하고 저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열심히(?) 저녁에 일찍 퇴근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하고요. 요즘은 간혹 집에서 저녁 먹고 들어오라는 전화가 옵니다.(웃음)

오랜 기간 몸에 밴 야근이란 습관을 되돌리는 데 반발은 없었나요.
야근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좋은 개발자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닐 겁니다. 책임감이 굉장히 강한 개발자들은 맡은 일이 진전되는 것을 확인하려고 야근을 하기도 합니다. 야근 금지를 반대하는 개발자들도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뭐라 하든 ‘내 일이기 때문에’ 야근을 해도 상관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죠. 소프트웨어 개발은 장기전이고 몇 달 바짝 해서 성공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건강과 가정을 지키며 일하자고 계속 설득해 지금은 야근 금지가 많이 정착되어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다들 일찍 퇴근합니다.

야근 금지를 비롯해 개발 문화라는 게 위에서 만들자고 해서 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몇 가지 중요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 전에는 제가 책을 읽고 거기에서 배운 것을 적용하는 것을 좋아해 회사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 산이 아닌가 보네” 하는 상황이었죠.(웃음) MS에서 일하셨던 김평철 박사님이 2005년에 세미나와 코치를 해주시면서 그 곳에서 체득한 다양한 내용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때가 큰 계기가 됐습니다. 개발자들이 굉장히 좋아했는데 그 동안 막혔던 것들이 풀려나갔기 때문입니다. 애자일 방법론을 배운 것도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스스로 어떤 리더십 스타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때그때 다릅니다. 잔소리를 할 때도 있고 말없이 지원할 때도 있고요. 뭔가를 빨리 결정하기보다는 생각이 좀 많은 스타일인데 좋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사람들에게 투명하게 보여주려 하는데 일례로 사이냅소프트 인트라넷에는 임원 전용 메뉴가 없습니다. 회사 상황이나 정보를 임원이나 직원이 똑같이 볼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개발자에 대한 전적인 복지나 지원이 실행되려면 철학이 아니라 돈이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사이냅소프트는 이례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마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것이 옳다 또는 그르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예전에 인수합병 제의를 받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인수합병 시에는 보통 감원이 따르는데 제가 아끼는 개발자들이 구직 공고를 통해 대체할 수 있는 사람으로 평가 받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회사 개발자들이 더 높은 수준에 오를 수 있게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회사에서 큰 수익을 내는 것은 아니라 많은 혜택을 주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을 교육하고 일하는 환경을 개선하는 데 지금 버는 것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사이냅소프트 개발자들이 이런 인터뷰를 한다면 ‘정말 실력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개인을 위해서도, 회사를 위해서도 좋은 것입니다.

지금도 개발을 하시나요.
예. 수시로 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개발을 하다 문제에 부딪히면 같이 살펴보기도 하구요. 프로그래밍 공부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제품 코딩보다는 직원 교육을 위한 코딩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파이썬을 많이 쓰는데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파이썬으로 빠른 시간 안에 구현할 수 있어 직원들이 어떤 문제에 막혔을 때 그것을 푸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코드를 파이썬으로 짜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개발이 여전히 좋아 은퇴 후에도 코드를 짜는 걸 즐기지 않을까 합니다.

일을 하시면서 가장 중시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든다’를 들 수 있는데 사실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경험이 아직 많지 않은 개발자들을 보면 기술적인 면에서 독창적으로 잘 하는 것에만 관심이 많은데 그것을 넘어서 고객이 원하는 걸 만들기 위해 무슨 기술을 써야 할까를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프로그래밍이란 행위 자체가 독창성을 인정 받고 싶어하는 욕구를 끌어내는 것 같습니다. 독창성과 고객 만족 사이에서 적절한 접점은 없을까요.
회사 안에서도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모든 부분을 장인의 손길로 다듬을 수는 없고 핵심 부분은 독창성이나 예술가적 혼을 발휘하고 그 외의 부분은 경제성이나 공학적인 면을 고려해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영을 하다 보면 처음 소신이 흔들리게 하는 유혹은 없었나요.
크지는 않지만 회사가 시작부터 계속 수익을 내고 있어서 투자를 받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기도 합니다. 보통 투자를 받으면 다른 회사를 인수한다거나 사람을 더 뽑는다거나 해외 지사를 세우는 일들을 할 수 있겠죠. 그런데 회사는 그 문화가 받쳐 주는 만큼만 성장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이냅소프트는 지금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고 그 속도에 맞게 성장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회사에 문화가 없는 채로 성장하면 더 커진 후에는 수습하기가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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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국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을 보면 유명 개발자 한두 명에게 크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문화를 잘 가꾸며 체계적으로 개발을 하는 회사가 성공하는 사례가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 있다면 기꺼이 받아들여 배우고 적용할 계획입니다.

[전경헌 소개] KTNET에서 개발자로 일하다 2000년 사이냅소프트를 창업했다. 좋은 개발 문화를 만들고 ISV로서 내실 있는 성장을 하는 데 관심이 많다. 여전히 개발 공부를 하고 코드 짜기를 즐기는 사장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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